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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 와시다 기요카즈

역자 : 김경원

출판사 : 불광출판사

발매 : 2016.01.12

원제 : 待つ」ということ

기다리지 않아도 좋은 사회가 되었다.

기다릴 수 없는 사회가 되었다.

 

'기다림'은 기다리고 또 기다려도 응답이 없었다는 기억을 끊임없이 소거함으로써만 유지할 수 있다. 다 기다렸다, 끝까지 기다렸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내버리지 않으면 기다림은 있을 수 없다. 기와세 나오미의 영화 <사라소주>의 인상적인 대사를 인용하면 "잊어도 되는 것, 잊으면 안 되는 것, 그리고 잊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을 겨우겨우 정리해야만 기다림은 가능해진다. 기다림의 보람없음, 그것을 잊어버릴때 비로소 사람은 기다릴 수 있다. 그래서 기다림에는 '망각'이 내포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된다. 기다림이란 지우는 일이기도 하다. -P.20-

 

기다리지 않으면서, 기다리는 자신을 진정시키고 기다림 자체를 억누르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의식하는 일 없이 지긋이 기다리는 것...

이것은 어떠한 단념과 맞바꿈으로써 겨우 손에 넣을 수 있는 기다림이다. 지금은 일단 단념한다. 기대하지 않는다. 조마조마 마음 졸이는 일도 하지 않는다. 마음 한구석에 기다리고 있는 듯한 느낌도 완전히 잊는다. 안달복달하거나 애가 닳으면 사태는 분명 뒤틀릴 테니까.

어쩌면 '육아'는 그런 행위 일지도 모른다. 오로지 기다리지 않으면서 기다리는 것, 기다린다는 사실도 잊고 기다리는 것, 언젠가 알아주리라 바라지 않고 기다리는 것, 언젠가 기다림을 당했다는 사실도 깨닫지 못한 채 기대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

가족이 때로 몸을 무방비 상태로 드러낸 태 곁으로 다가오는 존재라고 한다면, 기대의 한 조각조차 다 없어지더라도 자신이 기다리는 대상이라는 감각에 뿌리를 내리고 있을지 모른다. 그 뿌리가 때로는 황당할 정도로 썩어버린다해도, 때로는 가장 잔혹한 모습으로 찢어발겨져 버린다 해도, 기다림을 당하는 쪽에서 보면 그것은 무언가 조금씩 쌓여가는 시간이다. -P.67-

 

들어준다는 것이 누군가의 말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면, 들어주는 일은 기다리는 일이다.

이야기하는 쪽에서는 무슨 이야기를 하든 이해받을 수 있구나, 조건을 따지지 않고 내말을 다 받아들여 주는구나, 하는 식으로 자신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는 감촉을 느낀다. 그렇다면 '들어준다'는 것은 어떤 형태로 말이 똑똑 떨어져 내릴지 예측할 수 없는 '남(他)'이 찾아오기를 기다린다는 뜻일 것이다. -P.81-

 

대기한다는 것, 희망도 예측도 확정도 없이 기다린다는 것, 기다림의 폐기와도 같은 끝없는 기다림 가운데 어느새 남이 불현듯 찾아온다는 것은 과연 어떤 사태일까. 기다림은 결국 기다림을 당하는 자를 향한 끝없는 종속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P.87-

 

"기엇은 한 장의 그림에 가까워진다."
"잊기 위해서 기다린다."

 

와줄리 없는 누군가를 기다린다. 상대방을 만나고 싶다기보다는 '기다림'이라는 행위의 틀 속에 자신을 집어넣는 그런 기다림이다. -P.162-

 

아무런 보증도 가능성도 없는 곳에서 기다리는 것,

왜 이러한 행위가 우리에게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시작되는 것일까.

어쩌면 기다리는 대상이 존재한다는 보증이 없는 채 기다리는 것은 사람에게 궁극적인 행위라기보다 '나'라는 것이 존재하기 시작하는 시원의 행위일지도 모른다.

"온갖 종교의 모든 문제는 필시 보증이 없는 것으로 귀착한다."고 말한 자크 데리다는 또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있을지도 모르고, 없을지도 모른다. 오히려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있으냐 없느냐의 보증이 없다는 점이 중요하다." 결국 마지막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아마도 이 문제일 것이다. -P.201-

 

"아직 끝나지 않았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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